네이버 구내식당은 기술로 밥을 먹는 회사다웠다. 식권을 안면 인식으로 결제하고, 모바일 앱으로 음료를 주문한 뒤 자동 회전 레일에 있는 접시에서 커피 같은 음료를 픽업할 수 있다. 기자가 찾은 날엔 개발자의 소울푸드라는 치즈 돈가스와 육개장이 나왔다. 삼백돈 돈가츠, 삐삣버거, 제주고로, 밀본 같은 맛집이 입점한 5층 레스토랑에서도 비대면으로 음식 주문 및 수령이 가능하다. 근무 중 출출하면 귀여운 로봇에 배달을 대신 맡긴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뽈뽈뽈 이동한 로봇이 카메라로 주문자를 확인한 뒤 음료나 편의점에서 구입한 간식거리를 건네준다.
구내식당은 기업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농심은 매주 금요일 ‘라면 데이’를 연다. 여름엔 둥지냉면이나 비빔면 같은 차가운 면 종류를 먹을 수 있다. 유행에 따라 짜파구리 같은 조리법도 적용한다. 오뚜기는 라면은 상시 제공하고, 죽과 컵밥 같은 제품도 무엇이든 꺼내 먹을 수 있도록 한다.
◇급식 업체들은 사활 건다
요즘 가장 치열한 건 ‘특식’ 경쟁이다. 직접 찾아가면 줄 서서 구매해야 하는 전국 맛집 제품을 구내식당 특식으로 내놓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강원도 속초의 명물 ‘만석닭강정’이, 삼성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하이브 구내 식당에는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베이글이 등장했다. 노티드 도넛과 테디뵈르하우스 크루아상 등도 인기 메뉴. 직원들은 “간사하지만 음식 하나에 애사심 생긴다”며 호응한다.
급식업체들은 “밥에 민감한 직장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고 말한다. 기업 구내식당 계약은 보통 1년 단위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면 사업장을 뺏길 수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밀키트를 만든 노하우를 단체 급식에 적용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 메뉴를 대량 공급에 맞춰 변형해 밀키트와 구내식당 두 곳에 적용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백화점에 입점한 왕푸징 마라탕과 망원 시장 튀김가게 바삭마차도 HRM에 이어 구내식당에 진출했다. 부산 문어묵은지 비빔밀면, 강릉 감자옹심이 떡만둣국 같은 향토 음식도 선보인다. 아워홈은 ‘급식의 외식화’를 내걸고 아비꼬, 포케올데이 같은 유명 외식 브랜드 메뉴와 팀홀튼, 번패티번 팝업스토어를 구내식당으로 끌어온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조선소에선 ‘해외식’이 나온다. 울산에 있는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에서는 베트남 반미나 쌀국수, 필리핀 다도보, 스리랑카의 도사와 비슷한 메뉴를 낸다. 반대로 건설사 등은 해외 현장에 파견된 한국인 근로자를 위한 한식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제3국식을 제공하는 구내식당을 운영한다.
작년부터 채소·과일 값 급등의 여파가 외식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구내식당을 찾는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가 증명한다. CJ프레시웨이와 삼성웰스토리, 현대그린푸드 같은 단체 급식 업체들은 모두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외부인 받는 구내식당도 인기
회사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으니 그림의 떡이라고? 외부인 출입을 막지 않는 구내식당도 있다. 외식 물가가 비싼 강남, 여의도, 광화문 같은 업무지구의 가성비 구내식당 리스트가 공유될 정도다.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원들은 점심 시간에 법원·경찰서·관공서 구내식당이나 외부인을 받는 다른 회사 구내식당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지난 20일 찾은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 5000원짜리 식권을 구매한 뒤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인근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김밥 프랜차이즈의 라면 한 그릇(5500원)보다 쌌다. 밥과 김치, 샐러드, 상추 무침과 명엽채, 떡과 감자를 넣은 돼지고기 찜을 원하는 만큼 담고, 맑은 두부 국을 받았다. 직장 상사와 후배로 보이는 팀은 물론, 혼자 온 사람도 많았다. 근처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국 구내식당도 사정은 비슷했다. 외부인은 6000원이지만 구운 가지 카레와 오이 부추 무침, 생선 튀김, 디저트로 알새우칩까지 먹을 수 있었다.
여의도에서는 FKI타워(구 전경련회관) 구내식당이, 마포에서는 S오일 구내식당이 음식 잘 나오기로 유명하다. 서대문도서관이나 종로구청 등도 인기이다. 다만, 구내식당마다 외부인이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으니 확인할 것.
“밥 한번 먹자”는 또 보자는 인사말, “밥 한번 살게”는 감사 인사,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건 푸념이다. 한국인은 철천지 원수에게도 “콩밥 먹게 해줄게”라고 협박한다. 균형 있고 다양한 식단을 유지하는 구내식당 밥이 직원에 대한 제1 복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K직장인은 오늘도 밥심으로 일한다.
※기사 초반 사진의 정답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사옥의 우미학 차돌깍두기 볶음밥, 네이버 본사의 치즈돈까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삼선간짜장. 아래는 각 회사의 점심 메뉴를 모아본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