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고령자에 무리하게 ELS 판매한 은행들, ‘적합성 원칙’ 위배한 것”

2023-11-29 dawon 22



최근 홍콩 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들이 고위험 상품을 고령자에게까지 무리하게 판매한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ELS는 지수나 종목 주가 등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정해지는 파생 금융 상품이다.

이 원장은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23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상 ‘적합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적합성의 원칙이란 금융회사는 소비자의 투자 성향이나 자금 운용 목적 등을 고려해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하고, 소비자가 상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장은 “홍콩H지수의 경우 2016년 불과 몇 개월 사이 49.3%나 폭락한 전례가 있다”며 “등락이 극심했다는 점, 원금 손실이 발생한 전례가 있던 점을 고령 투자자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권유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한 ELS 판매 잔액은 현재 약 20조원으로 이 중 16조원가량이 은행을 통해 팔려 나갔다. 16조원 중 절반이 넘는 8조3000억원어치가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데, 손실 영향권에 진입한 물량이 약 4조7000억원(56%)에 달한다.

이 원장은 은행들이 “법적 절차를 준수하며 ELS를 판매했다”고 해명하는 것에 대해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이 원장은 “고객이 묻기도 전에 판매해놓고 무지성으로 자필 서명, 녹취 등을 운운하며 피해 예방 조치를 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 면피”라며 “고객이 서명하고, ‘네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해서 (불완전 판매의)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은행들의 무리한 ELS 판매에 본사 차원의 ‘핵심 성과 지표(KPI)’ 방침 등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금감원은 홍콩 H지수 연계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과 일부 증권사에 대해서도 조만간 ELS 관련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책임 분담 기준을 만드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